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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가 일찍 난 아이, 성장판도 빨리 닫힌다?
2026-09-14 16:45:14

윤정선 원장

아이의 성장 문제를 이야기할 때 부모들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현재 키와 또래와의 차이다. 하지만 실제 성장 진료 현장에서는 키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양상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키는 또래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사춘기의 신체 변화가 유난히 빠르게 나타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음모나 액모가 발달하거나 체취가 달라지는 아이도 있다.

최근에는 “아직 사춘기가 시작될 나이가 아닌 것 같은데 음모가 생겼어요”, “키는 잘 크는 것 같은데 음모가 또래보다 빨리 난 것 같아요”라고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최근 아이들의 식습관과 수면 패턴, 신체활동량, 체중과 체성분, 스트레스 등 성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사춘기와 성장의 양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각각의 요인이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음모가 또래보다 일찍 발달한 아이는 성장판도 빨리 닫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음모의 발달만으로 성장판이 빨리 닫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음모가 발달하는 과정에는 부신에서 분비되는 안드로겐이라는 호르몬이 관여하며, 이 호르몬의 변화가 아이의 골성숙과도 일정한 관련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신에서 분비되는 DHEA, DHEA-S, androstenedione 등의 부신 안드로겐은 부신이 성숙하는 과정인 ‘아드레나키(adrenarche)’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면 음모나 액모가 발달하고 성인과 비슷한 체취가 나타날 수 있으며, 피지 분비가 늘면서 지성 피부나 여드름이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어린아이에게 음모가 자라고 체취가 달라지는 등의 변화가 나타난다면 단순히 외관상의 변화로만 보기보다, 아이의 몸에서 사춘기와 관련된 변화가 언제부터 어떤 속도로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하나의 단서로 볼 수 있다.

다만 음모가 생겼다고 해서 곧바로 난소나 고환에서 성호르몬 분비가 본격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신 안드로겐에 의한 아드레나키와 성호르몬에 의해 진행되는 사춘기는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부 연구에서는 DHEA, DHEA-S, androstenedione 등의 부신 안드로겐 증가가 골연령의 진행이나 골격 성숙의 가속과 연관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부신 안드로겐의 증가가 아이의 골성숙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골연령이 앞서갈 수 있다’는 것과 ‘성장판이 빨리 닫힌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성장판의 성숙과 최종적인 폐쇄에는 성호르몬 중에서도 에스트로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자아이에서는 난소에서 분비되는 에스트로겐이, 남자아이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방향화효소(aromatase)를 통해 에스트라디올로 전환되는 과정이 성장판의 성숙과 폐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음모 발달 → 부신 안드로겐 증가 → 성장판 조기 폐쇄라는 일직선의 관계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음모가 빨리 발달한 아이에서 골연령이 다소 앞서 있을 가능성은 고려할 수 있지만, 음모의 발달 시기나 양만으로 성장판의 상태와 최종 키를 예측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음모가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전체적인 성장 흐름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현재 키와 체중, 최근 1년간의 성장속도, 골연령, 유방 발달이나 고환 크기 변화 등 다른 2차 성징이 어떤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필요한 경우 Tanner stage를 통한 사춘기 발달 정도를 평가하고, 임상적인 상황에 따라 LH•FSH, estradiol, testosterone, DHEA-S 등의 호르몬 검사를 추가할 수도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음모나 액모가 발달하면서 키가 갑자기 빠르게 자라거나 체취, 피지 분비 등의 변화가 함께 나타난다면 “요즘 아이들은 원래 사춘기가 빠르다”고 넘기기보다 성장과 사춘기가 어떤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아이들의 성장 문제는 점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키가 작아서 고민하는 아이뿐 아니라 또래보다 사춘기 변화가 빠르게 나타나거나 성장속도가 갑자기 달라지는 아이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장, 이제는 작은 변화도 함께 살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모두 비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아이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기와 성장 속도에는 개인차가 있으며, 음모가 일찍 발달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장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활환경이 과거와 달라지고 다양한 자극과 환경적 요인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들을 세심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만으로 특정한 하나의 원인이 성장판을 빨리 닫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예전과 다른 성장 양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음모나 액모의 조기 발달 역시 눈여겨볼 만한 변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음모가 언제 생겼느냐 하나만으로 아이의 최종 키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음모 발달을 비롯해 키와 성장속도, 골연령, 체중과 체형, 다른 2차 성징의 진행 여부를 함께 살펴보면서 아이가 지금 어떤 성장 과정에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은 어느 한 가지 증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아이의 몸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 하나하나를 성장의 전체 흐름 속에서 바라볼 때, 필요한 성장 관리의 시점도 보다 정확하게 찾을 수 있다.(하우연한의원 윤정선 대표원장)

출처 : 미디어파인(https://www.mediaf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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